닭들이 쪼르르 달려옵니다. 아이의 발을 톡톡 쫍니다. 아이의 발에 떨어진 밥풀을 주워먹습니다. 아이는 발에 이상한 느낌이 들자 이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닭도 놀라 갑자기 푸드득거립니다. 아이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닭은 더 큰 모양으로 푸드득거립니다. 묘한 모양새가 연출됩니다. 아이와 닭은 이중창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게 연주가 되고 맙니다. 예전의 시골아이들은 집에서 닭을 길렀습니다. 닭장을 어른들이 따로 만들어 주면 그 속에 닭을 길렀습니다. 때론 닭과 토끼를 함께 기르기도 했습니다. 닭들은 낮에는 닭장 바깥으로 놓아줘 흙속에서 먹이활동을 하도록 해줍니다. 밤이 되면 다시 닭장안으로 닭을 몰아넣습니다. 닭도 무서웠던지 밤이 되려고 하면 닭장 앞을 어슬렁거립니다. 닭을 노리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욕실 욕조에 물을 충분히 받아둡니다. 그 안에 풍덩하고 들어갑니다. 몸을 충분히 익숙하려 잠시 머리를 뒤로 젖혀 봅니다. 갑자기 어린시절의 아스라한 목욕과 목욕탕에 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까마득합니다. 가끔 영화 속에 그런 장면이 나올때마다 어린시절이 금방 새록새록 솟구치곤 합니다. 기억은 참 이상한 마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도회지의 삶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중목욕탕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여름에야 계곡물도 있고 냇물도 있어서 샤워나 목욕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겨울이면 목욕을 하는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목욕을 해야하는데 목욕을 하려면 참..
예전에 시골은 자급자족의 생활이었습니다. 모든 게 자급자족이 되었습니다. 특히 먹을 것은 스스로 재배하고 길러서 먹었습니다. 과일은 특히 그랬습니다. 밤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나무를 기르고 밤을 따서 가집니다. 밤은 자손의 풍성한 번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밤을 많이 길렀습니다. 시골에는 밤나무가 있습니다. 어떤 밤나무는 키가 너무나도 커서 밤이 익어도 이를 제대로 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 익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밤나무 아래를 지나노라면 갑자기 하늘 위에서 밤이 툭툭하고 떨어집니다. 밤이 떨어져 머리에 닿거나 몸에 닿으면 아프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밤을 주워서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우리나라는 막 개발이 되기 시작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새마을운동이 벌어져 도로도 포장하고 마을길도 넓혔습니다. 사방공사를 통해 민둥산에 나무도 심었습니다. 근검절약이란 표어가 곳곳에 붙어 다녔고 저축운동이 생활화 되었습니다. 초등(당시는 국민학교)학교에서조차 아이들이 자기 통장을 만들어 돈을 아껴서 저축을 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용돈이 생기면 저축통장에 넣었습니다. 당시에는 돼지저금통이 아이들마다 있었습니다. 10원이든 50원이든 100원이든 모이면 돼지저금통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돼지저금통이 꽉 차면 이를 은행에 들고가서 내 통장에 넣곤 했습니다. 통장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은 뿌듯했습니다. 통장에 든 돈을 나중에 한꺼번에 찾아 돼지를 사서 기르겠다는 야무진 포부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골집은 거미들의 천국입니다. 방안에도 거미가 살고 있고 부엌 화장실 심지어는 가방 안에서 거미가 나오기도 해서 화들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골은 거미들이 살기가 좋은 곳입니다. 이런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거미가 아주 익숙하고 별것 아닌 동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도회지에서 자랐거나 아직 거미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거미를 무서워하거나 피하기 마련입니다. 여름이면 거미는 왕성하게 거미줄을 칩니다. 그리고선 거미줄 한 켠에서 먹이가 걸려들기 바라고 있습니다. 가장 거미줄에 잘 걸리는 곤충은 하루살이들입니다. 또한 잠자리도 간혹 걸려 파드득 거리기도 합니다. 새들은 거미줄에 걸려도 이내 거미줄을 뚫고 다시 날아가 버립니다. 작은 곤충들과 날파리 같은 것들은 곧잘 거미줄에 걸리곤 합니다. 새가 ..